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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사지

관리자 | 2012.05.18 13:35 | 조회 5682


감은사지
사적 제31호
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앙북면 용당리

감은사는 신라 문무대왕이 삼국 통일의 대업을 성취하고 난 후 부처의 힘으로 왜국의 침입을 막고자 이곳에 절을 세우다 완성하지 못하고 돌아가자 아들인 신문왕이 그 뜻을 좇아 즉위한 지 2년 되던 해인 682년에 완성한 신라 시대의 사찰이었다.

문무대왕은 죽기 전에 "내가 죽으면 바다의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고자 하니 화장하여 동해에 장사 지낼 것"을 유언하였는데, 그 뜻을 받들어 장사한 곳이 바로 대왕암이며 부왕의 은혜에 감사하여 사찰을 완성하고 이름은 감은사라 하였다고 전하고 있다.

현재의 모습은 1979년부터 2년에 걸쳐 전면 발굴조사를 실시하여 얻어진 자료를 통해 창건 당시의 건물 기초대로 노출 정비한 것이며, 아울러 금당의 지하에는 바다용이 된 문무대왕의 휴식을 위한 상징적인 공간을 마련한 특수 구조와 동쪽으로 통로를 만들었다고 하는 흔적도 밝혀놓은 것이다.

우뚝 솟은 두 삼층석탑은 만들어진 연대가 확실한 통일신라 초기의 석탑으로서 수십 개의 부분으로 나누어 만들어 조립식으로 세운 것으로 전체 높이 13m에 이르는 신라 삼층석탑중 최대의 것이다. 감은사는 문무대왕이 나라를 지키겠다는 충의 뜻과 신문왕이 부왕의 은혜예 감사해서 지은 효, 즉 충효의 정신이 깃들인 유적이라 하겠다.


감은사지 삼층석탑

국보 제112호
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양북면

용당리 동서로 마주서 있는 이 탑은 신라 신문왕 2년 (682)에 세워진 석탑이다.
화강암 이중 기단 위에 세워진 방형 중층의 이 탑은 동서 양탑이 같은 규모와 구조를 보인다.

하층 기단은 지대석과 면석을 같은 돌로 각각 12매의 석재로 구성하였다. 상층 기단은 면석을 12매로, 갑석은 8매로 구성하였다. 탱주는 하층 기단에 3주, 상층 기단에 2주를 세웠다. 초층 옥신은 각 우주와 면석을 따로 세웠으며, 2층은 각면이 한 돌, 3층은 전체가 한 돌로 되었다. 옥개석은 받침돌을 별석으로 각층 4매씩의 돌로 되었다. 그리고 옥개석 받침은 각층마다 5단의 층급으로 되었다.

상륜부는 양탑 모두 노반과 높이 3.3m의 철제 찰주가 남아 있다. 목조 가구를 모방한 형적을 보이며 옥개석 받침을 층단식으로 한 수법은 전탑의 전단계 모습을 추정케 한다. 기단을 이중으로 하는 형식은 새로운 형식으로 이와 같은 양식은 이후로 한국 석탑의 규범을 이루는 것이 되었다.

또한 1960년 서탑을 해체 보수할 때 3층 탑신에서 창건 당시 설치하였던 매우 정교하고 귀중한 사리장치가 발견되었다. 탑의 전체 높이는 13.4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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