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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주변관광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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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국립경주박물관</title>
			<description><![CDATA[  
<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620" align="center">
    <tbody>
    <tr>
        <td width="520">
            <div style="background-position: 50% 0%; background-repeat: no-repeat;" id="ContentsLayer17" class="skinViewContent">
                <table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0" align="center">
                    <tbody>
                    <tr>
                        <td width="550">
                            <p align="center"><img border="0" src="http://www.shillamiso.co.kr/pages/image/gj17.jpg"></p>
                            <p align="center"> </p>
                        </td>
                    </tr>
                    </tbody>
                </table>
                <p align="left"><strong><font color="#666600"></font></strong>&nbsp;</p>
                <p align="left"><strong><font color="#666600">◈국립경주박물관◈</font></strong> <br><br>경주가 신라천년의 고도였던 까닭에 문화재보호에 일찍 눈을  뜬 이 지역의 유지들이 신라고분을 보호하기 위한 모임으로 1910년 '신라회'를 만들었다. 그 뒤 이 모임은1913년 '고적보존회'로 발전하여 1915년 경주 객사인 현재 경주경찰서 화랑관 뒤 건물에 진열관을 두었다. 이것이 국립경주박물관의 전신이다.<br><br>뜻만 있으면 귀중한  문화재를 모으는 데는 그리 어려움이 없던 때인지라 진열품이 늘어나 장소도 현재의 동부동 동헌자리로
옮기고
규모도 확장하였다. 해방 뒤에는 서울의  총독부박물관이 국립박물관으로 정식 개관하자 국립박물관 경주분관이 되었다. 이후 별다른 발전을 이루지 못하다가 5.16 군사쿠데타 이후 정치적  안정이 이루어지자 비로소 활기를 띠고, 1975년 현재의 자리인 반월성 동쪽 인왕동으로 이전하여 개관하게 되었다. <br><br>1985년  안압지에서 출토된 유물을 보관, 전시하기 위한 제2별관이 개관돼 본관, 제1전시실과 더불어 모두 세 개의 전시관을 두게 되었으며, 뜰에도 많은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경주박물관은 2,500여 점의 유물을 상설 전시하고 있으며
8만여 점의 유물을 보유하고 있다. <br><br>본관에는  경주와 주변 지역에서 수집한 선사 시대부터 원삼국 시대까지의 유물을 전시한 선사 원삼국실, 이양선 박사가 기증한 문화재를 전시하고 있는 이양선  기증유물 전시실 신라와 통일신라 시대의 불교조각과 금속공예품 등을 전시한 불교미술실로 이루어져 있다. 선사 원삼국실 입구에는 울주 대고리  반구대의 너비 8m, 높이 2m의 암벽에 새겨진 암각화 탁본이 전시되어 있다. 이 그림에는 고래, 호랑이, 개, 사슴, 돼지 같은 짐승과  생식기가 표현된 남자, 배, 사냥하는 모습들도 보인다.<br><br>전시
유물로는 경북 지방에서 출토된 토기와 석기(신석기 문화), 구정동에서  출토된 무기와 의식용 도구, 경주 입실리에서 출토된 무기와 장신구, 대구 평리동의 유물(초기 철기문화), 조양동 38호 무덤에서 발굴된  유적(원삼국시대 문화) 들이 대표적이다. <br><br>불교미술실에는1976년부터 1983년까지 8년 동안 황룡사터 발굴조사를 통해 출토된  유물과 황룡사 복원 모형(1/60 축소), 사리장치 등의 금속공예, 불상(심화령 애기부처, 백률사 금동약사여래입상), 십이지상(김유신 묘에서  출토된 납석제 십이지상) 등의 조각품과 이차돈 순교비, 그리고
남산신성비 비석 같은 금석문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br><br>이양선 기증유물  전시실에는 의사였던 이양선 씨가 30년간 개인적으로 모아온 수집품(666점)이 있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기마형 인물토기, 오리형 토기가 있다. </p>
                <div align="left">
                    <table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613">
                        <tbody>
                        <tr>
                            <td width="613">                            
                                <p align="left"><br>제1별관은 고분관으로 신라고분에서 출토된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br>일제 시대 발굴된 금관총, 서봉총을  비롯하여 1970년대에 조사된 계림로 고분, <a target="_blank" href="http://www.gyeongju-tour.co.kr/index.php3?inc=history#13"><b><u><font color="#0066cc">미추왕</font></u></b></a>릉지구 고분, 천마총, 황남대총, 그리고 최근에 조사된 정래동 고분, 월성로  고분, 용강동 고분, 황성동 고분 등에서 출토된 유물들이 일괄 전시되고 있다.</p>
                            </td>
                        </tr>
                        </tbody>
                    </table>
                </div>
                <p align="left"><br>제2별관은 안압지관으로 안압지에서 나온 3만여 점의 유물 가운데 대표적인  유물을 선정하여 전시하고 있다. 이들 유물은 궁궐에서 쓰던 실생활용품들로 당시의 궁중생활을 짐작하게 하는 귀중한 것들이다. <br><br>박물관  정문으로 들어서면 가장 눈에 띄는 것이 오른쪽 뜰에 자리 잡은 <a target="_blank" href="http://www.gyeongju-tour.co.kr/index.php3?inc=history#33"><b><u><font color="#0066cc">성덕대왕</font></u></b></a>신종이다. 그 밖에도 고선사터 석탑을 비롯하여 장항리에서 옮겨온 석조여래입상을  비롯한 많은
불상과 석탑, 석조, 석등, 비석
받침을 비롯한 각종 석조유물들이 뜰에 늘어서 있어 또 하나의 박물관을 이루고 있다. 국립경주박물관은 하나의 거대한 박물관인 경주를 밀도 있게 압축한곳으로 꼭 들러볼 일이다. <br>
</p>
            </div>
        </td>
    </tr>
    </tbody>
</table>
<p align="left"> </p>
<p>&nbsp;</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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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관리자</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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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Fri, 18 May 2012 16:17:54 +0900</dc:date>
			<dc:subject></dc:subject>
		</item>
		<item>
			<title>오릉</title>
			<description><![CDATA[ <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620" align="center">
    <tbody>
    <tr>
        <td width="520">
            <table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0" align="center">
                <tbody>
                <tr>
                    <td width="550">
                        <p align="center"><img border="0" src="http://www.shillamiso.co.kr/pages/image/gj16.jpg"></p>
                    </td>
                </tr>
                </tbody>
            </table>
            <p align="center"><strong><font color="#666600"></font></strong>&nbsp;</p>
            <p align="left"><strong><font color="#666600">◈오릉◈</font></strong> <br><br>신라의 시조왕릉으로 전하는  오릉&lt;五陵&gt;은 경주시내 평지 서남쪽에 위치한 봉토분으로 4기는 원형분이나 1기는 표형쌍분으로 되어 있다.<br><br>제1릉은 가장  남쪽에 있으며 높이 약 10m로 5기 가운데 가장 높고 크다. 제2릉은 제1릉의 동북쪽에 있으며 높이는 약 9m이다. 제3릉은 제2릉의 동쪽에  있으며, 높이는 약 7.2m로 표형쌍분의 형태를 가지고 있다. <br><br>이는 원형분 2기가 합쳐진 것이다. 제4릉은 제2릉의 서쪽에 있으며  높이는 약
3.6m이다. 제5릉은
제4릉의 동북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높이는 약 1.8m이다. <br><br>이와 같이 5기 중 1기는  표형쌍분으로 2인용 무덤이기 때문에 오릉의 실제 피장자는 6인이었을 가능성도 있다. <br>또 이와 같은 대형의 원형봉토분은 신라에서는 4세기  이후에 출현하는 것으로 후세 수축&lt;修築&gt;이었으면 몰라도 혁거세왕 당시의 고분 형식은 아니다. <br><br>《삼국사기》에는 오릉을  사릉&lt;蛇陵&gt;이라 했는데, 1대 <a target="_blank" href="http://www.gyeongju-tour.co.kr/include.php?inc=06_king#1"><b><u><font color="#0066cc">혁거세왕</font></u></b></a> <a target="_blank" href="http://www.gyeongju-tour.co.kr/include.php?inc=06_king#2"><b><u><font color="#0066cc">남해왕</font></u></b></a>·<a target="_blank" href="http://www.gyeongju-tour.co.kr/include.php?inc=06_king#3"><b><u><font color="#0066cc">유리왕</font></u></b></a>·<a target="_blank" href="http://www.gyeongju-tour.co.kr/include.php?inc=06_king#5"><b><u><font color="#0066cc">파사왕</font></u></b></a> 등 박씨 사왕을 사릉원내에 장사지냈다고 되어 있고, 《삼국사절요》에서는  혁거세왕과 알영부인을 합장하려 하자 뱀의 이변이 있어 각각 장사지냈다고 하였다.<br><br>그러나 《삼국유사》에서는 이와 다른 기록을 하고  있는데, 혁거세왕이
재위 62년만에 승천하였다가 그후 7일만에 유체가 흩어져 땅에 떨어졌고 왕후도 따라 승하하니 사람들이 합장하고자 하였으나 큰  뱀이 방해하여 오체를 각각 장사지냈으므로 오릉 또는 사릉이라 하며 담암사 북릉이 그것이라고 하였다. <br><br>지금 담암사 위치를 확실히 알  수는 없으나 오릉의 제실인 숭덕전 앞의 홍전문이 사찰의 당간지주를 이용하여 서 있는데, 오릉 옆에 사찰이 있었던 것은 분명하며, 이 당간지주를  담암사의 유물로 믿고 있다. <br><br>숭덕전은 조선 세조 11년(1429)에 창건되었으나 임진왜란 때 불타 선조 33년(1600)에  재건하였고,
숙종 20년(1694)에 수리하였으며 경종 3년(1723)에 사액되었다. 또한 경내에는 영조 35년(1759)에 세워진 혁거세왕과  숭덕전의 내력을 새긴 신도비가 있다. 숭덕전 위편에는 알영왕비의 탄생지라 하는 알영정 터가 있다.</p>
            <p align="left"> </p>
        </td>
    </tr>
    </tbody>
</table>
<p align="left"> </p>
<p>&nbsp;</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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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관리자</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guid>https://gdchal.com/?r=home&amp;m=bbs&amp;bid=tour2&amp;uid=17</guid>
			<dc:date>Fri, 18 May 2012 16:15:59 +0900</dc:date>
			<dc:subject></dc:subject>
		</item>
		<item>
			<title>분황사</title>
			<description><![CDATA[  
<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620" align="center">
    <tbody>
    <tr>
        <td width="520">            
            <div style="background-position: 50% 0%; background-repeat: no-repeat;" id="ContentsLayer14" class="skinViewContent">
                <p align="center"><img border="0" src="http://www.shillamiso.co.kr/pages/image/gj14.jpg"></p>
                <p align="center"><strong><font color="#666600"></font></strong> </p>
                <p align="left"><strong><font color="#666600"></font></strong>&nbsp;</p>
                <p align="left"><strong><font color="#666600">◈분황사◈</font></strong> <br><br>황룡사와 담장을 같이 하고 있는 분황사는 <a target="_blank" href="http://www.gyeongju-tour.co.kr/include.php?inc=06_king#27"><b><u><font color="#0066cc">선덕여왕</font></u></b></a> 3년(634)에 건립되었으며 우리 민족이 낳은 위대한 고승 원효와 자장이  거쳐간 절이다. </p>
                <div align="left">
                    <table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617">
                        <tbody>
                        <tr>
                            <td width="617">
                                <p align="left"><br>643년에 자장이 당나라에서 대장경의 일부와 불전을 장식하는 물건들을 가지고 귀국하자 선덕여왕은 그를 분황사에  머무르게 하였다. 또 원효는 이 절에 머물면서 「화엄경소 ,「금광명경소 등 수많은 저술을 남겼다. <br><br>또 원효가 죽은 뒤 그의 아들  설총은 원효의 유해로 소상을 만들어 이 절에 모셔두고 죽을 때까지 공경하였다. 일연이 「삼국유사」를 저술할 때나지는 원효의 소상이 있었다고  한다. <br>또한 좌전 북쪽 벽에 있었던 천수대비 그림은 영험이 있기로 유명했다.</p>
                            </td>
                        </tr>
                        </tbody>
                    </table>
                </div>
                <p align="left"><br><a target="_blank" href="http://www.gyeongju-tour.co.kr/include.php?inc=06_king#35"><b><u><font color="#0066cc">경덕왕</font></u></b></a> 때 희명의 다섯 살 난 아이가 갑자기 눈이 멀자 아이를 안고 천수대비 앞에  가서 '도천수대비가'를 가르쳐주고 노래를 부르면서 빌게 하였더니 눈을 뜨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br><br>솔거가 그린 관음보살상  벽화가 있었다고 하며, 경덕왕 14년(755)에는 무게가 30만6,700근이나 되는 약사여래입상을 만들어서 이 절에 봉양하였다고 한다. <br><br>역사가 오랜 분황사에는
허다한 유물이 있었을 터이나 몽고의 침략과 임진왜란 등으로 모두 유실되었고, 지금은 분황사에 둘러놓은 어른  키 만한 담장 위로 석탑의 윗부분만이 보이는 자그마한 절이 되었다.<br><br>현재 분황사 경내에는 분황사 석탑과 화쟁국사비편, 삼룡변어정이라는 우물들이 있으며, 석등과 대석 같은 많은 초석들과 허물어진 탑의 부재였던 벽돌 모양의 돌들이 한편에 쌓여 있다. 1965년  분황사 뒷담 북쪽으로 30여 미터 떨어진 우물 속에서 출토된 불상들이 경주박물관 뜰에 늘어서 있다.</p>
                <p align="left">
                
                <div align="left">
                    <table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616">
                        <tbody>
                        <tr>
                            <td width="616">
                                <p align="left"><br><font color="#669900"><b>분황사</b></font><br>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구황동 <br><br>이 절은  신라 선덕여왕 3년(634)에 창건되었으며, 신라 서라벌내 7개 가람 중 하나에 속한다. 조선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 경내에는 모전석탑을 비롯하여 화정국사비의 귀부와 석정, 석조, 석등 등의 유물이 있다. <br><br>국보 제30호로 지정된 모전석탑은 안산암의  석재를 벽돌처럼 깎아 쌓은 탑으로 분황사 창건과 같은 시대에 세운 것으로 보고 있다. 원래의 규모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일반적으로는 9층탑으로  보고 있는데 현재에는 3층만이 남아 있다. <br><br>1915년 일본인들이 수리하던 당시 2층 탑신과 3층 탑신의 중간에서 석재의 사리함이  발견되어 그 속에서 각종의 비취옥을 비롯한 옥재류와 가위. 은바늘 등과 함께 숭녕통보 등의 고전이 발견되었는데, 고려 시대에 이 모전석탑을  해체하고 수리하면서 동전 등을 봉납하였던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br><br>넓은 기단의 네 구석에는 석사자를 배치하였다. 1층 탑신의 4면에는  화강암으로 만든 출입구가 있으며, 양편에는 불법을 수호하는 인왕상을 조각하였는데 부드러우면서도
힘찬 모습은 신라 석조미술의 걸작품에 속한다. <br><br>화정국사비의 귀부는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고려평장사 한문준의 소찬'으로 되어 있으며 임진왜란 후까지 있었던 것으로 보이나  현재 비신은 유실되고 귀부만 남아 있다. 석정은 당나라 사신과 두 마리 용간에 얽힌 전설이 있는 우물로서 지금도 잘 보존되고 있다.</p>
                            </td>
                        </tr>
                        </tbody>
                    </table>
                </div>
                <p align="left"><br><br><font color="#666600"><b>분황사 석탑 </b></font><br></p>
                <div align="left">
                    <table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614">
                        <tbody>
                        <tr>
                            <td width="614">
                                <p align="left"><br>안산암을 벽돌 모양으로 다듬어 쌓은 높이 9.3m의 모전석탑이다. 분황사 창건 당시 만들어진 석탑이 임진왜란 때  반쯤 파괴되었는데, 조선시대에 이 절의 중이 수리하려고 하다가 도리어 더욱 파손시켜 1915년 다시 수리를 하였다. 현재는 3층으로 되어 있으나  원래는 7층 혹은 9층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기단은 한 변 약13m, 높이 약l.06m로 크기가 제각기 다른 막돌로 쌓았다. 밑에는 상당히  큰돌을 쌓았고 탑신 쪽으로 갈수록 경사가 급해지고 있다. 기단 위에는 화강암으로 조각한 동물 한
마리씩을 네 모퉁이에 배치하였는데, 동해를  바라보는 곳에는 물개, 내륙으로 향한 곳에는 사자가 있다.<br></p>
                            </td>
                        </tr>
                        </tbody>
                    </table>
                </div>
                <p align="left">현재 탑신부는 3층까지 남아 있으며, 탑신은  위쪽이 아래쪽보다 약간 좁다. 1층 네 면에는 입구가 열려 있는 감실을 만들어 놓았으며 입구 양쪽에 인왕상을 세웠다. 이 인왕상은 모두 반라이며  옷 무늬가 각기 다르다. 전체적으로 불법을 수호하는 신답게 막강한 힘을 느끼게 하는 조각으로 7세기 삼국시대의 조각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탑의 1층 네 면에 감실을 만든 것은 목탑의 뜻을 살린 것이다. <br><br>현재 감실 안에는 머리가 없는 불상이 놓여 있는데 원래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2층과 3층은
1층에 비하여 높이가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국보 제30호로 지정되어 있다. 1915년 일본인들이 해체, 수리할 때 2층과 3층 사이에서 석함 속에 장치된 사리 장엄구가 발견되었다. 이때 발견된 병 모양의 그릇, 은합, 실패와 바늘, 침통, 금은제  가위 등은 경주박물관에 있다.<br><br></p>
                <div align="left">
                    <table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616">
                        <tbody>
                        <tr>
                            <td width="616">
                                <p align="left"><br><font color="#669900"><b>분황사 석탑 </b></font><br>국보 제30호 <br>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구황동 <br><br>이 석탑은 돌을 흙으로 구워 만든 전돌처럼 깎아 만들어 쌓은 석탑으로, 전돌로 쌓은 탑을 모방하였다 하여 모전석탑이라고  부른다. 탑이 세워진 것은 분황사 창건과 같은 신라 선덕여왕 3년(634)으로 보고 있으며, 3층으로 되어 있는 지금의 모습은 1915년  일본인에 의해 수리된 것으로 원래의 규모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수리 당시 2층과 3층 사이에 들어 있던 사리함 속에서
각종의 옥류 가위, 은바늘 등과 함께 숭녕통보 상평오수 등 고려 시대의 중국 주화가 발견됨으로써 창건 당시의 사리장치에 추가하여 고려 시대에서도 탑을 해체하고  수리하면서 동전을 넣었던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br><br>넓은 방형의 기단 위에 세워진 1층 탑신의 4면에 화강암으로 만든 출입구가  있으며, 양편에는 불법을 수호하는 금강역사라고도 하는 인왕상을 조각하였는데 부드러우면서도 힘찬 모습은 신라 조각의 걸작품에 속한다.</p>
                            </td>
                        </tr>
                        </tbody>
                    </table>
                </div>
            </div>
        </td>
    </tr>
    </tbody>
</table>
<p align="left"> </p>
<p>&nbsp;</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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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관리자</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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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Fri, 18 May 2012 16:11:19 +0900</dc:date>
			<dc:subject></dc:subject>
		</item>
		<item>
			<title>김유신장군묘</title>
			<description><![CDATA[  
<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620" align="center">
    <tbody>
    <tr>
        <td width="520">
            <div style="background-position: 50% 0%; background-repeat: no-repeat;" id="ContentsLayer13" class="skinViewContent">
                <table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0" align="center">
                    <tbody>
                    <tr>
                        <td width="550">
                            <p align="center"><img border="0" src="http://www.shillamiso.co.kr/pages/image/gj13.jpg"></p>
                        </td>
                    </tr>
                    </tbody>
                </table>
                <p align="center"> </p>
                <table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10" width="500" align="center">
                    <tbody>
                    <tr>
                        <td height="218">
                            <p align="center"><img border="0" src="http://www.gyeongju-tour.co.kr/template/document/images/ja.jpg" width="85" height="158"><br>자(子:쥐) <br>북(北)</p>
                        </td>
                        <td height="218">
                            <p align="center"><img border="0" src="http://www.gyeongju-tour.co.kr/template/document/images/chuk.jpg" width="83" height="159"><br>축(丑:소) <br>북북동(北北東)</p>
                        </td>
                        <td height="218">
                            <p align="center"><img border="0" src="http://www.gyeongju-tour.co.kr/template/document/images/in.jpg" width="85" height="162"><br>인(寅:호랑이) <br>동동북(東東北) </p>
                        </td>
                        <td height="218">
                            <p align="center"><img border="0" src="http://www.gyeongju-tour.co.kr/template/document/images/myo.jpg" width="85" height="159"><br>묘(卯:토끼) <br>동(東)</p>
                        </td>
                    </tr>
                    <tr>
                        <td>
                            <p align="center"><img border="0" src="http://www.gyeongju-tour.co.kr/template/document/images/myo.jpg" width="93" height="170"><br>진(辰:용) <br>동동남(東東南)</p>
                        </td>
                        <td>
                            <p align="center"><img border="0" src="http://www.gyeongju-tour.co.kr/template/document/images/sa.jpg" width="97" height="178"><br>사(巳:뱀) <br>남남동(南南東)</p>
                        </td>
                        <td>
                            <p align="center"><img border="0" src="http://www.gyeongju-tour.co.kr/template/document/images/o.jpg" width="94" height="173"><br>오(午:말) <br>남(南)</p>
                        </td>
                        <td>
                            <p align="center"><img border="0" src="http://www.gyeongju-tour.co.kr/template/document/images/mi.jpg" width="95" height="174"><br>미(未:양) <br>남남서(南南西)</p>
                        </td>
                    </tr>
                    <tr>
                        <td>
                            <p align="center"><img border="0" src="http://www.gyeongju-tour.co.kr/template/document/images/sin.jpg" width="96" height="178"><br>신(申:원숭이)<br>서서남(西西南)</p>
                        </td>
                        <td>
                            <p align="center"><img border="0" src="http://www.gyeongju-tour.co.kr/template/document/images/yu.jpg" width="98" height="182"><br>유(酉:닭) <br>서(西)</p>
                        </td>
                        <td>
                            <p align="center"><img border="0" src="http://www.gyeongju-tour.co.kr/template/document/images/sul.jpg" width="95" height="180"><br>술(戌:개) <br>서서북(西西北)</p>
                        </td>
                        <td>
                            <p align="center"><img border="0" src="http://www.gyeongju-tour.co.kr/template/document/images/hae.jpg" width="99" height="184"><br>해(亥:돼지)<br>북북서(北北西)</p>
                        </td>
                    </tr>
                    </tbody>
                </table>
                <p align="left">고속버스터미널 옆 서천교를 넘어 오른쪽으로 김유신 묘 가는 길이 나  있다. 이 길은 김유신 묘를 위해 특별히 낸 흥무로이다. 봄이면 길가에 개나리 벚꽃이 활짝 피어 드라이브 코스로도 인기가 높다.</p>
                <div align="left">
                    <table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615">
                        <tbody>
                        <tr>
                            <td width="615">
                                <p align="left"><br>묏자리는 송화산 줄기가 동쪽으로 뻗어 전망이 좋은 울창한 소나무 숲 속이며, 어느 왕릉에 견주어도 뒤떨어지지  않는 화려한 모습을 하고 있다.<br><br>지름만 30m에 달하는 큰 원형분인데 둘레에는 호석과 돌난간을 둘렀다.<br><br>호석과 돌난간  사이에는 바닥에 돌을 깔았다. 호석은 쥐, 소, 호랑이, 토끼, 용, 뱀, 말, 양, 원숭이, 닭, 개, 돼지 등 십이지신상이다. <br></p>
                            </td>
                        </tr>
                        </tbody>
                    </table>
                </div>
                <p align="left">대개의 경우 능을 지키는 수호신으로는 갑옷을 입은 조각들이 새겨지는데 김유신 묘의  십이지신상은 평복을 입고 무기를 들었다. 몸체는 정면을 보고 서 있으나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려 주시하는 머리 모습이 이색적이다. 무장을 하지  않아 그런지 매우 온화해 보인다.<br><font color="#666600"><b></b></font></p>
                <p align="left"><font color="#666600"><b>십이지신상 </b></font><br>「삼국유사」에 "김유신이 죽은 뒤 흥무대왕으로 봉하였으며, 그 능은 서산(西山) 모지사(毛只寺)를 동향한 산봉에 있다"고 하고, 또 「삼국사기」에 "<a target="_blank" href="http://www.gyeongju-tour.co.kr/include.php?inc=06_king#30"><b><u><font color="#0066cc">문무왕</font></u></b></a>이 그 의 부음을 듣고 채백(彩帛)1천 필과 조(租) 2천 석을 보내고, 군악고취(軍樂鼓吹) 100인을 보내 금산원에 예장하고, 유사(有司)로 하여금 비를 세워 기공(紀功)을
기명하고,
민호(民戶)를 배정하여 묘를  수호하게 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으니, 죽은 뒤 그의 죽음을 애도한 문무왕이 호화로운 능을 마련해주지 않았나 싶다. 사적 제21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묘 아래쪽에 묘를 지키는 금산재(金山齋)가 있다.</p>
            </div>
        </td>
    </tr>
    </tbody>
</table>
<p align="center"> </p>
<p>&nbsp;</p>]]></description>
			<link>https://gdchal.com/?r=home&amp;m=bbs&amp;bid=tour2&amp;uid=14</link>
			<dc:creator>관리자</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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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Fri, 18 May 2012 15:45:51 +0900</dc:date>
			<dc:subject></dc:subject>
		</item>
		<item>
			<title>천마총</title>
			<description><![CDATA[  
<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550" align="center">
    <tbody>
    <tr>
        <td width="520">
            <div id="PrintLayer12">
                <div style="background-position: 50% 0%; background-repeat: no-repeat;" id="ContentsLayer12" class="skinView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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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iv style="background-position: 50% 0%; background-repeat: no-repeat;" id="ContentsLayer12" class="skinViewContent">
                            <table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615" align="center">
                                <tbody>
                                <tr>
                                    <td width="615">
                                        <p align="center"><img border="0" src="http://www.shillamiso.co.kr/pages/image/gj12.jpg"></p>
                                    </td>
                                </tr>
                                </tbody>
                            </table>
                            <p align="left">&nbsp;</p>
                            <p align="left"><strong><font color="#666600"></font></strong> </p>
                            <p align="left"><strong><font color="#666600">◈천마총◈</font></strong> <br><br>고분의 구조를 속속들이 들여다볼 수 있는 천마총(155호 고분)은  내부에 직접 출토유물을 전시하고 있어 대릉원의 고분 가운데 관람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br>봉분의 높이는 12.7m이고, 봉분의 밑  지름 이 47m나 된다. <br><br>천마총의 발굴은 1973년 4월 6일부터 12월 4일까지 진행되었다. 당시 황남대총을 발굴하기 전 연습  삼아 발굴해보자 해서 삽질이 시작되었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그 내부는 세상이 떠들썩해질
만큼 놀라웠다.
찬란한 신라문화의 보물창고가  천년만에 햇빛을 보게 된 것이다. <br></p>
                            <div align="left">
                                <table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611">
                                    <tbody>
                                    <tr>
                                        <td width="611">
                                            <p align="left">우선 천마총은 고분의 축조방법을 알게 하는 충실한 견본이 될 만하다. 먼저 땅을 고르고 목곽이 놓일 자리를 깊이 40cm정도로 판 뒤 어른 머리 크기의 냇돌을 깔았으며, 분구 밑바닥 전체에 점토를 다져 두께 15cm 정도의 기초를 만들었다. <br>그리고  그 위에 폭 50cm, 높이 약 40cm로 냇돌을 깔아 일종의 받침대를 만들고, 그 위에 동서 6.6m, 남북4.2m, 높이 2m 크기의 목곽을  놓았다. 목곽은 결국 지상에 놓이게 되는 셈이다. 목곽 위와 주위에는 직경 23.6m,높이 75m가 되게 돌을
쌓은 뒤, 물이 내부로
스며드는  것을 막기 위해 점토를 20cm 두께로 발랐다.</p>
                                        </td>
                                    </tr>
                                    </tbody>
                                </table>
                            </div>
                            <p align="left"><br>곽 안에는 동서로 길게 2.15mx1m의  목관을 놓았고, 동쪽의 머리끝에서 50cm 떨어진 곳에 l.8m x 1m 0.8m 되는 크기의 부장품 목궤를 놓았다.<br>출토된 장신구의  유물은 한결같이 순금제였으며, 신분을 가늠할 수 있는 마구류도 이제까지 출토되지 않았던 진귀한 것이었다. 출토된 유물들로 미루어 5세기말에서 6세기초의 능으로 추정된다. 특히 천마총에서 출토된 금관은 경주시내에 있는 금관총, 금령총, 서봉총들에서 출토된 금관보다 크고 장식이 한층 더  호화로운 것이었다. <br><br>또한 자작나무로
만든 말다래(말이 달릴 때 튀는 흙을 막는
마구)에 하늘로 날아오르는 천마가 그려져 있어 고분  이름을 천마총이라 부르게 되었다. 이는 신라의 회화예술을 알 수 있게 해주는 귀중한 실물 자료이다. <br><br>목관 안에는 금제 허리띠를  두르고 금관을 썼으며, 둥근 고리장식의 자루가 붙은 칼을 차고 팔목에 금팔찌 및 은팔찌 각 1쌍. 그리고 손가락마다 금반지를 낀 주검이 누워  있었다. 이것이 옛 신라인의 생활모습을 짐작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됨은 물론이다. <br><br>-<font color="#666600"><b>천마도 </b></font><br><br>신라의 그림 수준을 알려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말 옆구리에 진흙
같은  것이 튀지 않도록 달아매는 다래에 그려진 그림으로 너비 75cm, 세로 53cm의 크기이다. 자작나무 껍질을 여러 겹 겹쳐 실로 누비고 둘레에  가죽을 댔다. <br>
</p>
                            <div align="left">
                                <table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620">
                                    <tbody>
                                    <tr>
                                        <td width="550">
                                            <p align="left"><br>안쪽 주공간에 백마를 그렸는데, 네 다리 사이에서 나온 고사리 모양 같은 날개, 길게 내민 혀, 바람에 나부끼는  갈기와 위로 솟은 꼬리 등이 하늘을 나르는 천마임을 말해주고 있다. <br><br>이 천마는 사실적인 그림이 아닌데다 백색 일색이기 때문에 말의  몸에 힘이 나타나 있지는 않으나 실루엣으로서는 잘 묘사되었다. <br>둘레의 인동 당초문대도 각부가 정확한 비율로 구성되었으며 고구려 사신총에서  보는 완숙한 당초문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p>
                                        </td>
                                    </tr>
                                    </tbody>
                                </table>
                            </div>
                            <p align="left"><br>-<font color="#666600"><b>금관</b></font><b><br></b>
</p>
                            <div align="left">
                                <table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3" width="565">
                                    <tbody>
                                    <tr>
                                        <td vAlign="bottom" width="559">
                                            <p align="left">전형적인 신라의 금관이다.<br>피장자가 착용한 채 발견된 이 왕관은 원형  대륜(머리띠) 앞에는 네 줄기의 出자형의 장식을, 뒤에는 두 줄기의 사슴뿔 모양 장식을 세운 형태이다.<br><br>다른 금관에 비해 금판이  두텁고, 대개가 출자형 가지가 3단인데 이 금관은 4단인 것이 특징이다.<br><br>또 다른 고분과는 달리 이 관을 제외한 내관과 기타  장신기구들은 모두 관 밖에서 다른 부장품들과 함께 발견되었다. <br><br></p>
                                        </td>
                                    </tr>
                                    </tbody>
                                </table>
                            </div>
                            <p align="left"><b><br><font color="#666600">허리장식</font></b> <br><br>전체 길이 125Cm인 허리띠는 목관내 피장자의 허리 위치에서 착용된 채  발견되었다. <br><br>허리띠 안쪽에 대어 있던 가죽은 이미 모두 삭아 없어져버렸다.<br><br>금 허리띠는 44개의 과판(띠를 구성하는  판)과 띠고리, 그리고 고리에 끼우는 부분으로 되어 있으며 모두 13조의 허리장식이 달려 있다. <br><br>구름무늬가 있는 과판 전면에는 9개의 작은 구멍이 뚫려 있어 안에 댄 가죽에 못을 박게 되어 있다. 긴 타원형 금판 다섯 개가 사각형의
연결판으로 연결되어 있는 허리장식  끝에는
꼬리장식으로 숫돌 모양, 곡옥, 유리옥, 족집게, 구멍 뚫린 병 모양, 고기 모양 등이 달려 있다. 각 모양마다 당시 사회에서  중요시되었던 어떤 상징적인 의미가 들어 있을 터인데 이를 해석해내지 못하고 있다. 신라 허리장식으로서는 가장 큰 것이다</p>
                        </div>
                    </div>
                </div>
            </div>
            <div class="skinPt10">
            </div>
        </td>
    </tr>
    </tbody>
</table>
<p align="left"> </p>
<p>&nbsp;</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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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관리자</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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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Fri, 18 May 2012 15:41:38 +0900</dc:date>
			<dc:subject></dc:subject>
		</item>
		<item>
			<title>포석정</title>
			<description><![CDATA[ <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620" align="center">
    <tbody>
    <tr>
        <td width="520">
            <div style="background-repeat:no-repeat; background-position:50% 0%;" class="skinViewContent">
            </div>
            <table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0" align="center">
                <tbody>
                <tr>
                    <td width="560">
                        <p align="center"><img border="0" src="http://www.shillamiso.co.kr/pages/image/gj10.jpg"></p>
                        <p align="center"> </p>
                    </td>
                </tr>
                </tbody>
            </table>
            <div style="background-repeat:no-repeat; background-position:50% 0%;" class="skinViewContent">
            </div>
            <p style="background-position: 50% 0%; background-repeat: no-repeat;" class="skinViewContent" align="left"><strong></strong>&nbsp;</p>
            <p style="background-position: 50% 0%; background-repeat: no-repeat;" class="skinViewContent" align="left"><strong>◈포석정</strong> ◈<br>경주시 배동 소재, 이곳은 유서 깊은 신라의 이궁터&lt;離宮址&gt;로 <a target="_blank" href="http://www.gyeongju-tour.co.kr/include.php?inc=06_king#49"><b><u><font color="#0066cc">헌강왕</font></u></b></a> 때 어무상심&lt;御舞詳審&gt;의 신라 춤이 생겨난 곳이다. <br><br>젊은 화랑들이 맑은 물과 바람을 즐기고 남자다운 기상을 배우던 장소이기도 하다. 지금 남아 있는 돌로 된 물길은  유상곡수연&lt;流觴曲水宴&gt;을
즐기던 바로 그 곳이다.<br><br>유상곡수연이란 옛 중국의 명필 왕희지가 절강성 회계산 북쪽 난정에서  벗들과 함께 모여 흐르는 물 위에 술잔을 띄워 술잔이 자기 앞에 오는 동안 시를 지어 읊었으며 시를 짓지 못하면 벌주 3잔을 마시는 잔치를 한  고사를 말하는데, 이 놀이를 본따서 돌로 전복처럼 수로를 만들어 풍류를 즐기던 곳이 바로 포석정이다. <br><br>현재 수로는 22m 이며  높낮이의 차가 5.9 cm 이다. 좌우로 꺽이거나 굽이치게 한 구조에서 비롯되는 물길의 오묘한 흐름은 뱅뱅 돌기도 하여 물의 양, 띄우는 잔의  형태, 잔속에 담은 
의 양 등에 따라 많은 변수를 가지고 있어 유체공학적 계산상 잔이 흐르는 시간은 일정하지 않다. <br><br>근래에  실험적으로 물을 흐르게 한 뒤 크고 작은 두개의 잔에 3분의 2정도 술을 담아 띄위 본 결과 작은 잔은 수로를 흐르는데 10분 30초, 큰잔은 8분이 걸리었다. 이런 정도 시간이면 시 한 수를 지어 읊을 만 하다 하겠다. <br><br><a target="_blank" href="http://www.gyeongju-tour.co.kr/include.php?inc=06_king#55"><b><u><font color="#0066cc">경애왕</font></u></b></a>이 최후를 마쳤던 자리이기도 한 이곳은 산과 울창한 숲, 아름다운 죽림으로 둘러
 싸였던 경승지였다. </p>
            <div style="background-repeat:no-repeat; background-position:50% 0%;" class="skinViewContent">
            </div>
            <div style="background-repeat:no-repeat; background-position:50% 0%;" class="skinViewContent" align="center">
            </div>
            <div align="left">
                <table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614">
                    <tbody>
                    <tr>
                        <td width="614">
                            <p align="left"><br><font color="#669900"><b>포석정 </b></font><br>사적 제1호 <br>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배동<br><br>이 포석정은 신라 임금의 놀이터로 만들어진 별궁으로서 건물은 없어졌으나 역대 임금들이 잔을 띄우고 시를 옳으며 놀이한 것으로  생각되는 전복 모양의 석조 구조물만 남아 있다. 이 구조물은 만든 시기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통일신라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여겨지며, 폭은 약 35cm 깊이는 평균 26cm, 전체 길이는 약 10m이다. <br><br>자연환경을 최대로 활용하고 주위의 아름다운 경관과
인공적인 기술을  가미하여 이루어진 조화미는 신라 궁원 기술의 독특한 면모를 잘 보여주고 있다. 원래는 남산 계곡에서 흘러 들어오는 입구에 거북 모양의 큰돌이  있었고, 그 입에서 물이 나오도록 만들어졌다고 하나 지금은 없어져 정확한 형태를 알 수 없게 되었다. <br><br>이곳에는 신라 헌강왕이  포석정에서 놀이하고 있을 때, 남산의 신이 왕 앞에 나타나 춤을 추자 왕도 따라 추게 되어 이 춤으로 어무상심무라 하는 신라 춤이 만들어졌다고  전해오고도 있다. 927년 신라 경애왕이 이곳에서 잔치를 베풀고 놀이하고 있다가 후백제 견훤의 습격을
받아 붙잡히게 되어 스스로 목숨을 끊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던 신라 천년 역사에 치욕을 남긴 장소이기도 하다.</p>
                        </td>
                        <p align="left"><p align="left"></p>
</p>
                    </tr>
                    <p align="left"></p></tbody><p align="left"></p>
                </table>
            </div>
            <div style="background-repeat:no-repeat; background-position:50% 0%;" class="skinViewContent" align="left">
            </div>
            <div style="background-repeat:no-repeat; background-position:50% 0%;" class="skinViewContent" align="left">
            </div>
            <p align="left"></p>
        </td>
        <p align="left"><p align="left"></p>
</p>
    </tr>
    <p align="left"></p></tbody><p align="left"></p>
</table>
<p align="left"></p>
<p>&nbsp;</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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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관리자</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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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Fri, 18 May 2012 15:36:53 +0900</dc:date>
			<dc:subject></dc:subject>
		</item>
		<item>
			<title>첨성대</title>
			<description><![CDATA[ <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620" align="center">
    <tbody>
    <tr>
        <td width="520">
            <div style="background-repeat:no-repeat; background-position:50% 0%;" class="skinViewContent">
            </div>
            <table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0" align="center">
                <tbody>
                <tr>
                    <td width="560">
                        <p align="center"><img border="0" src="http://www.shillamiso.co.kr/pages/image/gj09.jpg"></p>
                    </td>
                </tr>
                </tbody>
            </table>
            <div style="background-repeat:no-repeat; background-position:50% 0%;" class="skinViewContent">
            </div>
            <p style="background-position: 50% 0%; background-repeat: no-repeat;" class="skinViewContent" align="center"><strong><font color="#666600"></font></strong>&nbsp;</p>
            <p style="background-position: 50% 0%; background-repeat: no-repeat;" class="skinViewContent" align="left"><strong><font color="#666600">◈첨성대◈<br></font></strong></p>
<strong><font color="#666600"></font></strong>
            <div style="background-repeat:no-repeat; background-position:50% 0%;" class="skinViewContent">
            </div>
            <div align="left">
                <table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609">
                    <tbody>
                    <tr>
                        <td width="609">
                            <p align="left"><br>계림을 지나 대릉원 쪽으로 난 길을 따라가면 맞은편에 우아하고 온순한 첨성대가 서 있다. <br>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첨성대처럼 논란이 많은 문화재도 없다. <br><br>그것은 첨성대의 쓰임에 관한 이견 때문인데, 어떤  이는 천문관측대였다고 하고, 나침반이 발달하지 못했던 시대에 자오선의 표준이 되었다고도 하며, 천문대의 상징 물이었을 것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첨성대의 의의는 그 자체가 매우 과학적인 건축물이며 돌 하나하나에 상징적 의미가 담겨 있다는
데에서
찾아볼 수 있을 터이다.전체적인 외형을 보면  크게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즉 사각형의 2중 기단을 쌓고 지름이 일정하지 않은 원주형으로 돌려 27단을 쌓아올렸으며, 꼭대기에는 우물  정(井)자 모양으로 돌을 엮어놓았다 각 석단의 높이는 약 30cm이고 화강암 하나하나가 같은 형태이지만, 각 석단을 이루는 원형의 지름이 점차  줄면서 부드러운 곡선을 이루고 있다. <br></p>
                        </td>
                    </tr>
                    </tbody>
                </table>
            </div>
            <div style="background-repeat:no-repeat; background-position:50% 0%;" class="skinViewContent">
                <p align="left"><br>. 13단과 15단의 중간에 남쪽으로 네모난 방을 내었는데 그  아래로 사다리를 걸쳤던 흔적이 남아있어, 이 창구를 통해 출입하면서 관측하였다는 추측을 가능하게 하는 증거가 된다. 이 창구 높이까지 내부는  흙으로 메워져 있다. <br><br>첨성대를 쌓은 돌의 수는 모두361개 반이며 음력으로 따진 일년의 날수와 같다 원주형으로 쌓은 석단은 27단인데, 맨 위의 정자모양의 돌까지 따지면 모두28단으로 기본 별자리 28수를 상징한다. 석단 중간의 네모난 창 아래위 12단의 석단은 12달 24절기를 의미한다고 한다.
첨성대 꼭대기의 井자모양의 돌은
신라 자오선의 표준이 되었으며 각 면이 정확히 동서남북의 방위를 가리킨다. <br><br>석단 중간의 창문은 정확히 남쪽을 향하고 있어 춘분과 추분 때에는 광선이 첨성대 밑바닥까지 완전히 비치고, 하지와 동지에는 아래  부분에서 광선이 완전히 사라져 춘하추동을 나누는 분점의 역할을 하였다. 이처럼 첨성대는 갖가지 상징과 과학적인 구조를 갖추고 있으며 미적으로도  성공을 거두고 있다. <br><br>둥근 하늘과 네모난 땅을 상징하는 사각형과 원형을 적절히 배합해 안정감 있고 온순한 인상을 주고 있으며 맨  위 정자석의 길이가 기단부 길이의
꼭 절반으로 된 것도 안정감을 표현하는 데 한몫하고 있다. <br><br>첨성대는 높이 9.108m, 밑  지름이 4.93m, 위 지름이 2.85m이며, 제27대 <a target="_blank" href="http://www.gyeongju-tour.co.kr/include.php?inc=06_king#27"><b><u><font color="#0066cc">선덕여왕</font></u></b></a> 재위 중(632--647년)에 축조되었다. 국보 제31호로 지정되어  있다.<br>
</p>
            </div>
            <div style="background-repeat:no-repeat; background-position:50% 0%;" class="skinViewContent" align="center">
            </div>
            <div align="left">
                <table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614">
                    <tbody>
                    <tr>
                        <td width="614">
                            <p align="left"><br><font color="#669900"><b>첨성대 </b></font><br>국보 제31호 <br>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인장동 <br><br>첨성대는 신라 선덕여왕(632~647)때에 조영된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관측대이다. 화강석을 가공하여 기단 위에 27단의 석단을  원통형 곡선으로 쌓아올려 그 위에 방형의 장대석을 두 겹으로 우물정자와 같이 얹어 천문을 살피도록 시설하고 있다. <br><br>정남을 향해  밑에서부터 제13단과 제15단 사이예 감실과 같은 사각 문이 뚫려 있다. 첨성대의 규모는 밑면의 지름이 5.17m 높이가 9.4m이며
석종의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는 신라 시대의 희귀한 유구이다.</p>
                        </td>
                        <p align="left"><p align="left"></p>
</p>
                    </tr>
                    <p align="left"></p></tbody><p align="left"></p>
                </table>
            </div>
            <div style="background-repeat:no-repeat; background-position:50% 0%;" class="skinViewContent" align="left">
            </div>
            <div style="background-repeat:no-repeat; background-position:50% 0%;" class="skinViewContent" align="left">
            </div>
            <p align="left"></p>
        </td>
        <p align="left"><p align="left"></p>
</p>
    </tr>
    <p align="left"></p></tbody><p align="left"></p>
</table>]]></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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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관리자</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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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Fri, 18 May 2012 13:41:21 +0900</dc:date>
			<dc:subject></dc:subject>
		</item>
		<item>
			<title>괘릉</title>
			<description><![CDATA[ <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620" align="center">
    <tbody>
    <tr>
        <td width="520">            
            <div style="background-repeat:no-repeat; background-position:50% 0%;" id="ContentsLayer8" class="skinViewContent">
                <p align="center"><img border="0" src="http://www.shillamiso.co.kr/pages/image/gj08.jpg"></p>
                <p align="center">&nbsp;</p>
                <p align="left"><strong><font color="#669900">괘릉 <br></font></strong>사적 제26호 <br>소재지 경상북도 경주시 외동읍 괘릉리 <br><br>신라  원성왕(725-798)의 능으로 추정되는 이 왕릉은 본래 이곳에 있던 작은 연못에 왕의 유해를 수면상에 걸어 안장하였다고 하는 속설에 따라  괘릉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br><br>봉분의 밑둘레에는 12지신상을 새긴 호석을 둘렀고, 그 주위로 수십 개의 돌기둥을 세워  난간을 돌렸으며, 봉분 앞에 안산을 새긴 석상을 놓았다. <br><br>봉분에서 훨씬 떨어진 남쪽에는 돌사자 2쌍과
문인석 무인석 각 1쌍이  좌우대칭
으로 배치되었고, 그 앞에 화표석 2개가 좌우로 서 있다. 통일신라 시대의 완비된 능묘 제도의 대표적인 이 괘릉은 서역 사람의 얼굴  모습을 조각한 무인석에서도 볼 수 있듯이 당나라와의 활발한 문물교류를 통하여 이루어진 것이지만, 호석에 배치한 활달한 12지신상은 신라인의  창안이며 각종 석조물에서 볼 수 있는 힘찬 조각 수법은 당시 신라인의 문화적 독창성과 우수한 예술적 감각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 본문 : END -->
</p>
            </div>
        </td>
    </tr>
    </tbody>
</table>
<p align="left"><br><br>&nbsp;</p>]]></description>
			<link>https://gdchal.com/?r=home&amp;m=bbs&amp;bid=tour2&amp;uid=9</link>
			<dc:creator>관리자</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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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Fri, 18 May 2012 13:36:59 +0900</dc:date>
			<dc:subject></dc:subject>
		</item>
		<item>
			<title>감은사지</title>
			<description><![CDATA[  
<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620" align="center">
    <tbody>
    <tr>
        <td width="520">
            <p align="center"><img border="0" src="http://www.shillamiso.co.kr/pages/image/gj07.jpg"></p>
            <p align="left"><br><font color="#669900"><strong>감은사지 </strong></font><br>사적 제31호 <br>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앙북면  용당리 <br><br>감은사는 신라 문무대왕이 삼국 통일의 대업을 성취하고 난 후 부처의 힘으로 왜국의 침입을 막고자 이곳에 절을 세우다  완성하지 못하고 돌아가자 아들인 신문왕이 그 뜻을 좇아 즉위한 지 2년 되던 해인 682년에 완성한 신라 시대의 사찰이었다. <br><br>문무대왕은 죽기 전에 &quot;내가 죽으면 바다의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고자 하니 화장하여 동해에 장사 지낼 것&quot;을 유언하였는데,
그  뜻을 받들어 장사한
곳이 바로 대왕암이며 부왕의 은혜에 감사하여 사찰을 완성하고 이름은 감은사라 하였다고 전하고 있다. <br><br>현재의  모습은 1979년부터 2년에 걸쳐 전면 발굴조사를 실시하여 얻어진 자료를 통해 창건 당시의 건물 기초대로 노출 정비한 것이며, 아울러 금당의  지하에는 바다용이 된 문무대왕의 휴식을 위한 상징적인 공간을 마련한 특수 구조와 동쪽으로 통로를 만들었다고 하는 흔적도 밝혀놓은 것이다. <br><br>우뚝 솟은 두 삼층석탑은 만들어진 연대가 확실한 통일신라 초기의 석탑으로서 수십 개의 부분으로 나누어 만들어 조립식으로 세운
 것으로 전체 높이 13m에 이르는 신라 삼층석탑중 최대의 것이다. 감은사는 문무대왕이 나라를 지키겠다는 충의 뜻과 신문왕이 부왕의 은혜예  감사해서 지은 효, 즉 충효의 정신이 깃들인 유적이라 하겠다. <b><br><br><br><font color="#669900">감은사지 삼층석탑 </font></b><br>국보 제112호 <br>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양북면 <br><br>용당리 동서로 마주서 있는 이 탑은 신라  신문왕 2년 (682)에 세워진 석탑이다.<br>화강암 이중 기단 위에 세워진 방형 중층의 이 탑은 동서 양탑이 같은 규모와 구조를 보인다. <br><br>하층 기단은 지대석과
면석을 같은 돌로 각각 12매의 석재로 구성하였다. 상층 기단은 면석을 12매로, 갑석은 8매로 구성하였다. 탱주는 하층 기단에 3주, 상층 기단에 2주를 세웠다. 초층 옥신은 각 우주와 면석을 따로 세웠으며, 2층은 각면이 한 돌, 3층은 전체가 한  돌로 되었다. 옥개석은 받침돌을 별석으로 각층 4매씩의 돌로 되었다. 그리고 옥개석 받침은 각층마다 5단의 층급으로 되었다. <br><br>상륜부는 양탑 모두 노반과 높이 3.3m의 철제 찰주가 남아 있다. 목조 가구를 모방한 형적을 보이며 옥개석 받침을 층단식으로 한  수법은 전탑의 전단계 모습을 추정케
한다. 기단을 이중으로 하는 형식은 새로운 형식으로 이와 같은 양식은 이후로 한국 석탑의 규범을 이루는 것이  되었다. <br><br>또한 1960년 서탑을 해체 보수할 때 3층 탑신에서 창건 당시 설치하였던 매우 정교하고 귀중한 사리장치가 발견되었다. 탑의 전체 높이는 13.4m이다.</p>
        </td>
    </tr>
    </tbody>
</table>
<p align="left"><br><br>&nbsp;</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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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관리자</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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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Fri, 18 May 2012 13:35:22 +0900</dc:date>
			<dc:subject></dc:subject>
		</item>
		<item>
			<title>배리 삼존석불입상(삼불사)</title>
			<description><![CDATA[  
<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620" align="center">
    <tbody>
    <tr>
        <td width="520">
            <table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560" align="center">
                <tbody>
                <tr>
                    <td width="560">
                        <p align="center"><img border="0" src="http://www.shillamiso.co.kr/pages/image/gj06.jpg"></p>
                        <p align="center">&nbsp;</p>
                    </td>
                </tr>
                </tbody>
            </table>
            <p align="center"><strong><font color="#666600"></font></strong> </p>
            <p align="left"><strong><font color="#666600">◈배리 삼존석불입상(삼불사)◈</font></strong> <br></p>
            <div align="left">
                <table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612">
                    <tbody>
                    <tr>
                        <td width="612">
                            <p align="left">포석정을 지나 삼릉 쪽으로 약 400m 가다보면 삼불사를 가리키는 표지판이 있고 거기서 약 150m쯤 올라가면 근래  지어진 삼불사가 있다.<br>배리 삼존석불입상 보물 제63호로 지정된 이 삼존불상은 원래 이 자리에 흩어져 누워 있던 것을1923년 10월  한곳에 모아 세워놓은 것이다.<br>중앙 여래상은 높이 2.6m로 평면의 기단석 위에 서 있다. 얼굴은 전체적으로 풍만하고 단아하며 입가의  미소가 뛰어나다. 오른손은 다섯 손가락을 모두 펴 위로 향해 치켜든 시무외인(施無畏印)을, 왼손은 팔을 아래로
내려뜨리고
손바닥을 정면을  향하도록 편 시여원인(施與願印)의 자세를 취하고 있다.<br></p>
                        </td>
                    </tr>
                    </tbody>
                </table>
            </div>
            <p align="left">이러한 수인은 특히 고신라의 유물에서 많이 발견된다. 옷무늬는 아래로 내려올수록 크게 조각되었는데 발은 그대로 드러나  있다. 광배는 불상과 한 돌로 세워져 있다. 왼쪽의 보살상은 약 2.3m의 높이로, 이중의 연화대좌 위에 서 있다. 삼존 가운데 가장 조각이  섬세하며, 목에서 다리까지 드리운 구슬 목걸이를 오른손으로 감싸쥐고 있다. 얼굴 모습은 본존과 마찬가지로 부드럽고 자애로운 미소를 한껏 머금고  있으며, 왼손은 어깨까지 쳐들고 불경을 쥐고 있다. 불행히도 무릎 부위에서 불상이 잘렸는데도 위험한 대로
그냥두고
있다. <br>광배에는  작은부처 다섯을 새겨놓았는데, 그 부처들도 또한 작은 광배를 가지고 있어 특이하다. 광배의 가장자리는 구름무늬로 둘렀다.                         
                        <div align="left">
                <table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614">
                    <tbody>
                    <tr>
                        <td width="614">
                            <p align="left">오른쪽의 보살상은 삼존 가운데 가장 수법이 떨어지는 편에 속한다. 높이는 2.3m이며, 오른손은 펴서 가슴에 얹고  왼손은 굽혀서 허리 부분에 대고 있다. 왼쪽의 보살상이 다소 가냘픈 느낌을 주는 반면, 오른쪽의 보살상은 전체적으로 몸을 뒤로 젖혀 다소 우람한  느낌을준다. <br>이 삼존불의 전체적인 특성은 동안(童顔)의 미소라든가 손의 모습, 몸의 체감비율. 옷무늬를 처리한 방식 들로 삼화령  애기부처를 떠올리게 한다. 이런 점에서 이곳 삼존불상과 삼화령 애기부처, 그리고 부처골 석불좌상(감실부처)은
남산에서 볼 수 있는 고신라 시대의  작품이다. 보물 제 63호로 지정돼 있다. <br></p>
                        </td>
                    </tr>
                    </tbody>
                </table>
            </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left">
                <table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611">
                    <tbody>
                    <tr>
                        <td width="611">
                            <p align="left"><br><font color="#669900"><b>배리 석불입상 </b></font><br>보물 제63호 <br>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배동 <br><br>이 세 석불은 이곳 남산 기슭에 흩어져 누워 있던 것을 1923년에 지금의 자리에 모아서 세운 것이다. 중앙 여래상은 높이 2.66m, 좌우의 보살상은 높이 2.3m이다. 특히 조각솜씨가 뛰어나 다정한 얼굴과 몸 등이 인간적인 정감이 넘치면서도 함부로 범할 수 없는  종교적인 신비가 풍기고 있다. <br><br>풍만한 사각형의 얼굴, 둥근 눈썹. 아래로 뜬 눈, 다문 입, 깊이 파인 보조개, 살진
뺨 등  온화하고
자비로운 불성을 간직한 이 석불들은 7세기경 신라 불상 조각의 대표적인 것이다.</p>
                        </td>
                        <p align="left"><p align="left">
                        </p><p></p>
                    </tr>
                    <p align="left">
                    </p></tbody><p align="left">
                    </p>
                </table>
            </div>
            <p align="left">
        </p>
        </td>
        <p align="left"><p align="left">
        </p><p></p>
    </tr>
    <p align="left">
    </p></tbody><p align="left">
    </p>
</table>
<p align="left">
</p>
<p align="left"> </p>
<p align="left">
</p>
<p>&nbsp;</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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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관리자</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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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Fri, 18 May 2012 13:33:29 +0900</dc:date>
			<dc:subject></dc:subject>
		</item>
		<item>
			<title>안압지</title>
			<description><![CDATA[  
<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550" align="center">
    <tbody>
    <tr>
        <td width="520">
            <table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620" align="center">
                <tbody>
                <tr>
                    <td height="31" width="599">
                        <table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614" align="center">
                            <tbody>
                            <tr>
                                <td height="133" width="614">
                                    <p align="center"> </p>
                                    <p align="center"><img border="0" src="http://www.shillamiso.co.kr/pages/image/gj05.jpg"></p>
                                    <p align="center">&nbsp;</p>
                                </td>
                            </tr>
                            </tbody>
                        </table>
                        <p align="center"><font color="purple"><b></b></font> </p>
                        <p align="left"><font color="purple"><b>◈안압지(임해전지)◈</b></font></p>
                    </td>
                </tr>
                <tr>
                    <td height="133" width="599">
                        <p align="left"><br>안압지는 신라천년의 궁궐인 반월성에서 동북쪽으로 걸어서 십분 거리에 있다. <br>통일 시기  영토를 넓히는 과정에 많은 부를 축적한 왕권은 극히 호화롭고 사치한 생활을 누리면서 크고 화려한 궁전을 갖추는데 각별한 관심을 두었다. <br>그리하여 통일 직후 674년에 안압지를 만들었으며 679년에는 화려한 궁궐을 중수하고 여러 개의 대문이 있는 규모가 큰 동궁을 새로  건설하였다. <br>안압지와 주변의 건축지들은 당시 궁전의 모습을 보여준다.<br>새 동궁, 곧 임해전의 확실한 위치는 알
수 없으며 다만  건물터의 초석만 발굴되었다. <br></p>
                    </td>
                </tr>
                <tr>
                    <td width="600">
                        <p align="left"><br>임해전과 안압지에 대한기록(삼국사기)을 살펴보면 궁내에 못을 팠다는 기록이 <b><a target="_blank" href="http://www.gyeongju-tour.co.kr/index.php3?inc=history#30"><u><font color="#0066cc">문무왕</font></u></a></b> 14년(674)과 <a target="_blank" href="http://www.gyeongju-tour.co.kr/index.php3?inc=history#35"><b><u><font color="#0066cc">경덕왕</font></u></b></a> 19년(760)에 두 번 나타나며, 임해전에서 군신에게 연을 베풀었다는기록이 <a target="_blank" href="http://www.gyeongju-tour.co.kr/index.php3?inc=history#32"><b><u><font
color="#0066cc">효소왕</font></u></b></a>6년(697)과 <a target="_blank" href="http://www.gyeongju-tour.co.kr/index.php3?inc=history#36"><b><u><font color="#0066cc">혜공왕</font></u></b></a> 5년(769)에 있다.</p>
                    </td>
                </tr>
                <tr>
                    <td height="1152" width="599">
                        <p align="left"><br>또 <a target="_blank" href="http://www.gyeongju-tour.co.kr/index.php3?inc=history#39"><b><u><font color="#0066cc">소성왕</font></u></b></a> 2년(800)에는 임해문과 인화문이 파손되었다고 전하고 있다. 이상을  정리해본다면 약 백 년 간격을 두고 궁내에 못을 팠다는 것은 처음 판 못을 보수나 확장한 것으로 해석되고, 임해전은 그 못 가까이 에 지어진  동궁이라 볼 수 있다. <br><br>또 임해문과 인화문이라는 것도 임해전을 중심으로 한 연못정원의 담에 있던 문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니  적어도
현재의 안압지가 조성된 연대는 문무왕 무렵 내지 그 이전으로 생각할 수 있을 터이다.<br><br>다만 「삼국사기」에 연못의 이름을 적지  않고 궁 안의 못이라고만 기록한 것은 신라가 망하고 고려가 건국되자 이곳이 궁궐로서의 역할을 할 수 없게 되고, 건물의 보수가 이루어지지 못해  폐허가 되어 이름을 남기지 못하였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br><br>1980년 안압지에서 발굴된 토기 파편 등으로 안압지의 원명이 '월지'(月池)이고 동궁은 월지궁으로 불렸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는 안압지가 반월성 가까이 에 있고 또 동궁의 위치가 연못 속에 비치는
 아롱거리는 달을 감상하기 알맞다는 심증적 이유 때문이다. 이 견해에 따르면 안압지라는 현재의 이름은 거의 본래의 모습을 잃은 못 가에 무성한  갈대와 부평초 사이를 오리와 기러기들이 날아다니자 조선의 묵객들이 붙인 것이라고 한다. <br><br>못은 동서 길이 약 190m, 남북길이가  약l90m의 장방형 평면이며, 면적은 1만5,658평방미터(4,738평), 세 섬을 포함한 호 안 석축의 길이는 1,285m이다. <br><br>못 가의 호 안은 다듬은 돌로 쌓았는데 동쪽과 북쪽은 절묘한 굴곡으로 만들고, 서쪽과 남쪽에는 건물을 배치하고 직선으로  만들었다.<br>서쪽
호 안은 몇 번 직각으로 꺾기도 하고 못 속으로 돌출 시키기도 했다. <br>따라서 못 가 어느 곳에서 바라보더라도 못  전체가 한눈에 들어오지 않으며 연못이 한없이 길게 이어진 듯 여겨진다.<br><br>못 속에는 섬이 세 곳 있는데, 세 섬의 크기가 각기 다르고  윤곽선 처리가 자연스럽다. 발해만의 동쪽에 있다고 하는 삼신도(방장도, 봉래도, 영주도)를 본딴 듯하다. 동쪽과 북쪽의 호 안에는 무산 12봉을  상징하는 언덕들을 잇달아 만들어 놓았다. 높이는 일정하지 않으나 3m에서 6m 정도이며 선녀들이 사는 선경을 상징한다. 「삼국사기」 문무왕
14년조를 보면 &quot;궁 안에 못을 파고 가산을 만들고 화초를 심고 기이한 짐승들을 길렀다&quot; 고 기록되어 있다.<br><br>동, 북, 남쪽 호  안의 높이는 2.1m 정도이고 궁전이 있는 서쪽 호 안은 5.4m로 좀더 높다. 이는 못 가의 누각에 앉아 원(苑)을 내려다볼 수 있게 배려한  높이이다. 못 바닥에는 강회와 바다 조약돌을 옮겨다 깔았는데, 못 가운데에 우물 모양의 목조물을 만들어 그 속에 심은 연뿌리가 연못 전체로  퍼져나가지 못하게 했다. 연꽃이 못에 가득하면 답답하고 좁게 보일 것을 미리 방지한 지혜이다. <br><br>못물의 깊이는 약
1.8m 정도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안압지의 시설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입수부와 배수부이다. 입수부는 물을 끌어들이는 장치를 한 곳으로 못의 동남쪽  귀퉁이에 있으며 정원 못에 연결되어 있다. <br><br>동남쪽의 계류나 북천에서 끌어온 물을 거북이를 음각한 것 같은 아래위 두개의 수조에  고이게 하였다가, 자연석 계단으로 흘러 폭포로 떨어져 연못으로 들어가게 만들었다. 아래위 수조는 약 20cm의 간격을 두고 있으며 그 주변에는  넘친 물이 지표로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해 넓적한 저수조를 만들었다 위 수조에는 용머리 토수구를 설치하여
용의 입으로 물을 토해서 아래 수조로  떨어지게 만들었다. 이 용머리는 없어지고 지금은 용머리를 끼운 자리만 남아 있다. <br><br>아래 수조에서 연못으로 떨어지는 폭포의 높이는  약 1.2m 정도이다. 또한 물이 입수부의 완충 수조를 지나 못으로 수직 낙하하는 지점에는 판판한 돌을 깔아놓았는데, 이는 못 바닥의 침식을  막기 위한 것이다. 이처럼 물을 끌어들이는 데도 세심한 배려를 하였다. <br><br>입수부를 통해 들어온 물은 연못 안의 곳곳을 돌아  동북쪽으로 나 있는 출수구로 흘러나가는데, 출수구에서는 나무로 된 마개로 부위를 조절했음을
알 수 있다. <br><br>안압지는 바라보는  기능으로 만들어진 궁원이다. 지척에 있는 무산 12봉이 아득하게 보이도록 협곡을 만들고, 삼신도와 무산 12봉 등 선경을 축소하여 피안의  세계처럼 만들었다. 지금도 외곽에 높은 담을 설치하여 경역을 아늑하게 만들고 갖가지 화초들과 새와 짐승들을 기르면 별천지 같은 깊은 원지의  생생함이 살아날 터이다. <br><br>연못 서쪽과 남쪽의 건물터 등을 조사한 결과 건물터 26동, 담장터 8곳, 배수로시설 2곳, 입수부 시설 1곳 등이 밝혀졌다. 1980년에는 연못 서쪽 호 안에 접하여 세워졌던 5개의 건물터 중에서
3개를 복원시켰으며, 건물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곳에는 초석을 복원하여 노출 시켰다. <br><br>유물은 와전류를 포함하여 3만여 점이 나왔다. 이 유물들은 당시 왕과 군신들이 이곳에서 향연  할 때 못 안으로 빠진 것과 935년 신라가 멸망하여 동궁이 폐허가 된 뒤 홍수 등 천재로 인하여 이 못 안으로 쓸려 들어간 것, 그리고 신라가  망하자 고려군이 동궁을 의도적으로 파괴하여 못 안으로 물건들을 쓸어 넣어 버린 것 등으로 추정된다. <br><br>안압지에서 출토된 유물들은  국립경주박물관 서쪽에 있는 안압지 관에 전시되어 있다. 당시 궁중에서
사용했던 생활용기들을 비롯하여 나무배 등 700여 점의 대표유물이 전시되고  있는데, 단일 유적지에서 출토된 유물로 전시관 하나를 다 채운 것도 보기 드문 일이다. 안압지에서 발견된 유물들은 부장품 적인 성격을 갖고 있는  신라무덤의 출토품과는 달리 실생활에서 사용되었던 것이 대부분이다.</p>
                    </td>
                </tr>
                </tbody>
            </table>
        </td>
    </tr>
    </tbody>
</table>]]></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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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관리자</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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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Fri, 18 May 2012 13:02:52 +0900</dc:date>
			<dc:subject></dc:subject>
		</item>
		<item>
			<title>불국사</title>
			<description><![CDATA[  
<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620" align="center">
    <tbody>
    <tr>
        <td width="520">
            <div style="background-position: 50% 0%; background-repeat: no-repeat;" id="ContentsLayer4" class="skinViewContent">
                <table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0" align="center">
                    <tbody>
                    <tr>
                        <td width="550">
                            <p align="center"><img border="0" src="http://www.shillamiso.co.kr/pages/image/gj04.jpg"></p>
                            <p align="center">&nbsp;</p>
                        </td>
                    </tr>
                    </tbody>
                </table>
                <p align="center"><strong><font color="#666600"></font></strong> </p>
                <p align="left"><strong><font color="#666600">◈불국사◈</font></strong> </p>
                <p align="left">'불국사' 하면 아무말이라도 한마디 덧붙이지 못하고  묵묵히 있을 사람이 몇이나 될까. <br>범영루의 처마에 걸린 아침해와 긴 석축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 한 점 갖지 못한 사람은 또 몇이나  될까.<br><br>수학여행에다 신혼여행에 효도관광까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우리 나라사람이라면 한번쯤 다녀간 관광지가 불국사이고 석굴암이다. <br><br>그러나 실상은 불국사에 대해 많이 알고 있다는 생각이 바로 불국사를 슬프게 하는 오해 일는지도 모른다. 흔히 불국사를 조화적  이상미와 세련미를 보여주는 신라문화의
정수이며 완결편
이라고들 한다. 무엇이 그런 극찬을 받게 하는 것인지, 무지의 눈과 번잡한 마음을 싹 씻어  버리고 새로운 마음으로 불국사를 다시 보자. <br><br>화려하고 장엄한 부처님의 세계를 땅위에 옮겨 세우려면 국민들의 합심과 그것을 뒤받침  해줄 만한 경제력, 곧 국력이 있어야한다. 삼국이 통일되어 나라가 안정되고 모든 문화가 골고루 발달하던 시기에 불국사는 만들어졌다. 『삼국유사』에는 <b><a target="_blank" href="http://www.gyeongju-tour.co.kr/index.php3?inc=history#35"><u><font color="#0066cc">경덕왕</font></u></a></b>10년(751), 김대성이 불국사를
창건하였다.는 이야기가 실려 있다. <br><br>「불국사고금창기」에 의하면 불국사는 <a target="_blank" href="http://www.gyeongju-tour.co.kr/index.php3?inc=history#23"><b><u><font color="#0066cc">법흥왕</font></u></b></a> 15년(528)에 지어졌고, <a target="_blank" href="http://www.gyeongju-tour.co.kr/index.php3?inc=history#30"><b><u><font color="#0066cc">문무왕</font></u></b></a> 10년(670)에 지은 무설전에서 의상의 제자인 표훈이 머물렀다고 하는 등  불국사 창건에 관해『삼국유사』와 다른 기록을 보이지만, 이는 믿을만한 연대가 못된다. 다만 총2천여 칸에
이르는60여 동의 크고 작은 전물들로  이루어졌다는 기록으로 보아 불국사의 규모만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br><br>이후 고려와 조선을 거치면서 여러 차례 중수 되었으며 임진왜란  때 크게 불타 석축만 남게 되었다. 창건 후 650여년간 뭇 사람들에게 참된 부처님, 참된 아름다움의 세계로 기억되던 불국사는 그 뒤로 여러  차례 다시 세워지곤 하였다. 그러나 이미 전쟁으로 국력이 기운 뒤였고 숭유억불정책으로 불교도 퇴락의 길을 걷고 있던 까닭에 신라의 정신을 되살릴  길이 없었을 터이다. <br><br>그 뒤 자하문, 범종각, 대웅전, 극락전 등만
간신히 남아 있다가 1969년 발굴 조사 뒤, 없어졌던  무설전, 관음전, 비로전, 경루, 회랑 등이 1973년의 대대적인 보수공사로 복원 되었다. <br><br>불국사는 높은 축대 위에 평지를  조성하고 여기에 전각들을 세운 대표적 가람이다. 현재의 경내는 크게 세 영역으로 나뉘는데, 대웅전과 극락전, 비로전이 각각중심 건물이 된다  극락전 뒤쪽에 복원되지 않았으나 법화전지로 알려진 건물터가 남아 있는 것을 보면 창건 당시의 불국사와 현재의 불국사 규모에는 차이가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br><br>현재 낱낱의 영역은 영역에 이르기 위한 계단, 영역
입구인 문, 영역의 중심 건물 영역을 둘러싼 회랑 등의 네 가지 기본  요소로 이루어진다. 불교적 해석을 빌면 각 영역이 하나의 이상적인 피안세계인 불국을 형상화한 것으로, 대웅전 영역은 석가여래의 피안세계를, 극락전 영역은 아미타불의 극락세계를, 비로전 영역은 비로자나불의 연화장 세계를 나타낸 것이다.<br><br>-<font color="#666600"><b>다보탑</b></font><br></p>
                <div align="left">
                    <table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0">
                        <tbody>
                        <tr>
                            <td width="550">
                                <p align="left"><br>사면으로 계단을 놓은 사각의 육중한 기단 위에 날개를 편 듯 힘찬 추녀가 가로 뻗친 사각 기와집 형식이며 , 그  위에 연꽃잎 모양으로 창문을 낸 팔각정이 세워진 3층 양식의 화려한 탑이다. 팔각지붕에는 귀마다 풍경이 달려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구멍이 뚫려  있다.<br><br>탑의 높이는 10.4m이며 국보 제20호로 지정돼 있다. 다보탑은 다른 탑에서는 전혀 볼 수 없는 통일신라 최전성기의 화려한  탑으로 완전히 규범에서 벗어나 참신하고 기발한 착상으로 이루어 졌다. <br></p>
                            </td>
                        </tr>
                        </tbody>
                    </table>
                </div>
                <p align="left"><br>또한 각 부분의 조각수법에 있어서도 마치  목조구조물을 보는 듯 아름답다. 다보탑은 그 화려함만큼 설명이 시끄러울 정도로 복잡한 구조로 짜여져 있다. <br>그러나 그것은 짜증을  만들어내는 복잡함이 아니라 정교함과 조화를 느끼게 하는 세밀함이라는 데에 묘미가 있다. 1층은 억센 사각, 2층은 아담한 팔각, 3층은 부드러운  원. 이렇게 변화를 주면서 강함은 차츰 연약하게 되고 억센 힘은 점점 부드러워진다. <br><br>사각의 기와집 앞에 놓인 돌사자는 원래 네  마리였으나 지금은 한 마리만 남아있다. 하지만
연화대좌에 새긴 꽃 모양이며
화려한 목걸이로 미루어보아 이 사자는 원래 있었던 것이 아니고  장식적인 사치를 즐겼던 9세기 초에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하는 짐작도 된다. 흙을 주무르듯 돌을 잘 구슬리고 다듬어낸 것이 다보탑의 솜씨라면, 석가탑의 솜씨는 커다란 통돌의 크기를 줄이면서 깔끔하게 상승하는 느낌을 만들어낸 것이다. <br><br>-<font color="#666600"><b>석가탑</b></font><br>
</p>
                <div align="left">
                    <table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611">
                        <tbody>
                        <tr>
                            <td width="611">
                                <p align="left">튼실한 2중의 기단 위에 탑신부의 몸돌과 지붕돌이 단순한 모양으로 크기가 줄어 들면서 차곡차곡 쌓아져 3층으로  솟아오른 석가탑은 감은사터 삼층석탑과 고선사터 삼층석탑에서 이어지는 통일신라삼층석탑의 전형을 이루고있다. <br>탑의 높이는 8.2m이며  국보 제21호로 지정돼 있다. 석가탑은 창건 이후 상륜부를 제외하고는 큰 손상 없이 원형대로 잘 보존되어왔다. 1966년 보수공사도중 석탑  안에서 사리 장엄구와 세계 최고의 목판 인쇄물이라 할 수 있는 무구 정광다라니경(국보 제126호)이
발견되었다. 이 유물들은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석가탑이 보여주는완벽한 균형미는치밀한 계산으로 만든 상승감과 안정감에서  비롯된다.</p>
                            </td>
                        </tr>
                        </tbody>
                    </table>
                </div>
                <p align="left"><br>1층의 몸돌과 2,3층의 몸돌의 비율이 4:2:2를 보이는 것은 감은사 탑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아래쪽에서 바라보는 사람의 시선을 고려한 것이다. <br>또한 지붕돌의 끄트머리를 보면 위로 치켜올려진 것 같지만, 실제로는  지붕돌의 낙수면 끝을 사선으로 내려친 것으로 끝이 위로 올라가는 듯한 느낌을 준다. 단정한 기단부와 탑신부에 비해 상륜부가 다소 시끄럽고 무겁게  보이는 것은 석가탑보다 백년이나 뒤에 만들어진 남원 실상사 삼층석탑의 상륜부를 그대로 본떠 만들어 얹었기 때문이다. <br><br>또한 석가탑
 아래에는 넓은 꽃잎으로 된 팔방금강좌가
둘러져 있어 전체적인 안정감을 더해준다. 석가탑은 '무영탑' 이라고도 불리는데, 이 탑을 만들었다는 석공  아사달과 아사녀의 전설이 있는 영지가 불국사 입구매표소에서 멀리 서쪽으로 내다보인다. <br><br><font color="#666600"><b>청운교, 백운교 </b></font><br><br>범영루와 좌경루가 솟아있는 석축 중앙에 쭉 힘차게 내뻗은 계단이  있다. 위쪽의 16계단이 백운교이고 아래쪽의 18계단이 청운교이다. 이 돌계단을 올라서면 자하문을 거쳐 대웅전으로 들어가게 된다. 청운교 밑에는  무지개 처럼 둥근 들보 모양으로 만들어진 홍예문이 있다. 지나치게
고요하고 안정된 긴 석축에 둥근 곡선으로 변화를 일으켜 생동하는 기운을  불어넣고 있다. <br><br>원래 석축아래에는 연못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도 계단왼쪽에 토함산의 물을 끌어들여 연못으로 물이 떨어지게 한  수구가 남아있다. <br><br>이 수구(오른쪽 사진)에서 연못으로 물이 떨어지면 거기서 이는 물보라에 무지개가 떴다고 한다. 못 위에 놓인  청운, 백운교와 연화, 칠보교, 긴 회랑과 경루, 종루 등 높은 누각들이 거꾸로 물위에 비쳐 절경을 이루었을 터이다. 청운. 백운교계단을  올라서면 자하문이다. 자하문은 석가모니의 피안세계인
대웅전 영역으로 들어서는 관문이다. <br><br>부처님의 몸을 자금광신(紫金光身)이라고도  하는데 자하문이란 부처님의 몸에서 나오는 자주빛 금색이 안개처럼 서리고 있다는 뜻이다. 이 문을 통과하면 세속의 무지와 속박을 떠나서 부처님의  세계가 눈앞에 펼쳐진다는 것을 상징하고 있다. <br><br>국보 제23호로 지정돼 있다.<br>한편, 자하문에서 내려다보면 범영루와 좌경루를  받들고 있는 주춧돌이 보인다. 특히 범영루의 주춧돌은 특이하게 쌓여 있다. 주춧돌은 동서남북 네 방향으로 각기 8매의 판석으로 조립되었는데, 밑  부분을 넓게 하고 중간에는
가늘고 좁게 하였다가 다시 밑 부분과 같이 넓게 쌓았다. 이러한 건축 양식은 아무데서도 찾아볼 수 없으며, 모방할 수  없는 신라특유의 슬기이다,</p>
            </div>
        </td>
    </tr>
    </tbody>
</table>]]></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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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관리자</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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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Fri, 18 May 2012 12:23:44 +0900</dc:date>
			<dc:subject></dc:subject>
		</item>
		<item>
			<title>경주 민속공예촌</title>
			<description><![CDATA[ <p align="center"> 
</p><div align="center"><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620" align="center">
    <tbody>
    <tr>
        <td width="520">
            <div style="background-position: 50% 0%; background-repeat: no-repeat;" class="skinViewContent">
                </div><p style="background-position: 50% 0%; background-repeat: no-repeat;" class="skinViewContent" align="center"><img border="0" src="http://www.shillamiso.co.kr/pages/image/gj03.jpg"></p><p style="background-position: 50% 0%; background-repeat: no-repeat;" class="skinViewContent" align="center">&nbsp;</p><div style="background-position: 50% 0%; background-repeat: no-repeat;" class="skinViewContent">
                </div><p style="background-position: 50% 0%; background-repeat: no-repeat;" class="skinViewContent" align="left"><strong><font color="#666600">◈경주  민속공예촌◈<br><br></font></strong>경주 민속공예촌은 신라 시대의 공예 기술을 보존하고 개발한다는 목표로 1986년에  만들어졌다. <br>토함산 기슭 2만여평의 택지에 조성된 경주 민속공예촌은 우리 민족의 얼과 멋과 솜씨가 깃든 전통민예품을 옛 모습대로 재현시켜  놓은 곳이다. <br>
</p><div style="background-position: 50% 0%; background-repeat: no-repeat;" class="skinViewContent" align="left">
                </div><div style="background-position: 50% 0%; background-repeat: no-repeat;" class="skinViewContent"><table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0"><p align="left">
                    </p><tbody><p align="left">
                    </p><tr><p align="left">
                        </p><td width="534"><p align="left">
                            </p><p align="left">민속공예의 계승 발전에 활력을 불어 넣고, 찬란했던 5천년 역사의 전통과 예술을 국내외에 과시하기 위하여 그동안  경주 지역에 흩어져 있던 공인들을 한 곳에 모은 한국적 촌락 형태의 민속품협업단지이다. <br>이곳에는 생산품을 전시, 판매하는 600평 규모의  현대식 종합전시장을 비롯하여 신라금관, 불상, 칠보 등 금속공예, 청자, 백자, 토기, 토제 인형 등 도자기 공예, 목가구, 목불상 등 목공예와  보석공예, 죽세공예품 등을 년중무휴로 옛 모습대로 재현시키고 있으며, 재래식 생산과정과 장인들의 솜씨를
관광객이 직접 관람할 수 있도록 개방하고  있다.<br></p>
                        </td>
                    </tr>
                    </tbody>
                </table></div><div style="background-position: 50% 0%; background-repeat: no-repeat;" class="skinViewContent">
<br><font color="#339999"><b>민속공예촌 입점 업체 명단 </b></font>
                </div><div style="background-position: 50% 0%; background-repeat: no-repeat;" class="skinViewContent"><table border="1" cellSpacing="0" borderColorLight="#006666" borderColorDark="white" cellPadding="3" width="100%">
                    <tbody>
                    <tr>
                        <td bgColor="olive" align="left">
                            <p align="center"><font color="white">업체명 </font></p>
                        </td>
                        <td bgColor="olive" align="left">
                            <p align="center"><font color="white">대표자 </font></p>
                        </td>
                        <td bgColor="olive" align="left">
                            <p align="center"><font color="white">소재지 </font></p>
                        </td>
                        <td bgColor="olive" align="left">
                            <p align="center"><font color="white">전화/FAX </font></p>
                        </td>
                        <td bgColor="olive" align="left">
                            <p align="center"><font color="white">생산품목 </font></p>
                        </td>
                    </tr>
                    <tr>
                        <td bgColor="#cae0ba" width="29%">(유)동협공예점</td>
                        <td width="9%">
                            <p align="center">김종준 </p>
                        </td>
                        <td width="26%">경주시 하동 201-25</td>
                        <td width="12%">746-6387 <br>/746-6388</td>
                        <td width="24%"><br>유기공예품</td>
                    </tr>
                    <tr>
                        <td bgColor="#cae0ba" width="29%">삼선방</td>
                        <td width="9%">
                            <p align="center">김진배 </p>
                        </td>
                        <td width="26%">경주시 하동 201-26</td>
                        <td width="12%">746-7538 <br>/745-2488</td>
                        <td width="24%">문화재모조(금관,장신구)</td>
                    </tr>
                    <tr>
                        <td bgColor="#cae0ba" width="29%">신라불상</td>
                        <td width="9%">
                            <p align="center">강복원 </p>
                        </td>
                        <td width="26%">경주시 하동 201-21</td>
                        <td width="12%">746-7050</td>
                        <td width="24%">불상조각</td>
                    </tr>
                    <tr>
                        <td bgColor="#cae0ba" width="29%">고청사</td>
                        <td width="9%">
                            <p align="center">윤광주 </p>
                        </td>
                        <td width="26%">경주시 하동 201-8</td>
                        <td width="12%">746-1870</td>
                        <td width="24%">토제인형,문화재 모조</td>
                    </tr>
                    <tr>
                        <td bgColor="#cae0ba" width="29%">보산토기</td>
                        <td width="9%">
                            <p align="center">배용석 </p>
                        </td>
                        <td width="26%">경주시 하동 201-7</td>
                        <td width="12%">746-5279</td>
                        <td width="24%">신라토기</td>
                    </tr>
                    <tr>
                        <td bgColor="#cae0ba" width="29%">사등이요</td>
                        <td width="9%">
                            <p align="center">최차란 </p>
                        </td>
                        <td width="26%">경주시 하동 201-42</td>
                        <td width="12%">746-6474</td>
                        <td width="24%">분청자기</td>
                    </tr>
                    <tr>
                        <td bgColor="#cae0ba" width="29%">신라요</td>
                        <td width="9%">
                            <p align="center">유효웅 </p>
                        </td>
                        <td width="26%">경주시 하동 201-10</td>
                        <td width="12%">746-1115 <br>/746-2868</td>
                        <td width="24%">신라토기</td>
                    </tr>
                    <tr>
                        <td bgColor="#cae0ba" width="29%">월성요</td>
                        <td width="9%">
                            <p align="center">우영길 </p>
                        </td>
                        <td width="26%">경주시 하동 201-6</td>
                        <td width="12%">746-4243</td>
                        <td width="24%">생활도자기</td>
                    </tr>
                    <tr>
                        <td bgColor="#cae0ba" width="29%">천마요</td>
                        <td width="9%">
                            <p align="center">김영득 </p>
                        </td>
                        <td width="26%">경주시 하동 201</td>
                        <td width="12%">746-2043 <br>/746-2043</td>
                        <td width="24%">청자,백자</td>
                    </tr>
                    <tr>
                        <td bgColor="#cae0ba" width="29%">서울공예(신라역사과학관)</td>
                        <td width="9%">
                            <p align="center">석우일 </p>
                        </td>
                        <td width="26%">경주시 하동 201-1</td>
                        <td width="12%">746-1869 <br>/746-5134</td>
                        <td width="24%">목불상(복원문화재 전시)</td>
                    </tr>
                    <tr>
                        <td bgColor="#cae0ba" width="29%">월산공예</td>
                        <td width="9%">
                            <p align="center">김희태 </p>
                        </td>
                        <td width="26%">경주시 하동 201-17</td>
                        <td width="12%">746-0400</td>
                        <td width="24%">목각공예</td>
                    </tr>
                    <tr>
                        <td bgColor="#cae0ba" width="29%">이조목공예</td>
                        <td width="9%">
                            <p align="center">김동학 </p>
                        </td>
                        <td width="26%">경주시 하동 201-22</td>
                        <td width="12%">748-2745 <br>/746-4335</td>
                        <td width="24%">전승가구,활통</td>
                    </tr>
                    <tr>
                        <td bgColor="#cae0ba" width="29%">자연조각연구원</td>
                        <td width="9%">
                            <p align="center">유철수 </p>
                        </td>
                        <td width="26%">경주시 하동 201-20</td>
                        <td width="12%">746-7708</td>
                        <td width="24%">목조각</td>
                    </tr>
                    <tr>
                        <td bgColor="#cae0ba" width="29%">수정사</td>
                        <td width="9%">
                            <p align="center">김종창 </p>
                        </td>
                        <td width="26%">경주시 하동 201-15</td>
                        <td width="12%">746-1521 <br>/746-2672</td>
                        <td width="24%">수정</td>
                    </tr>
                    <tr>
                        <td bgColor="#cae0ba" width="29%">토함공예</td>
                        <td width="9%">
                            <p align="center">김영섭 </p>
                        </td>
                        <td width="26%">경주시 하동 201-13</td>
                        <td width="12%">746-7445</td>
                        <td width="24%">수지,석공</td>
                    </tr>
                    <tr>
                        <td bgColor="#cae0ba" width="29%">수림원</td>
                        <td width="9%">
                            <p align="center">한상수 </p>
                        </td>
                        <td width="26%">경주시 하동 210-24</td>
                        <td width="12%">746-7525</td>
                        <td width="24%">전승자수</td>
                    </tr>
                    <tr>
                        <td bgColor="#cae0ba" width="29%">토심제</td>
                        <td width="9%">
                            <p align="center">이종근 </p>
                        </td>
                        <td width="26%">경주시 하동 201-3</td>
                        <td width="12%">748-7054</td>
                        <td width="24%">전가공예품</td>
                    </tr>
                    <tr>
                        <td bgColor="#cae0ba" width="29%">청원죽세</td>
                        <td width="9%">
                            <p align="center">박성규 </p>
                        </td>
                        <td width="26%">경주시 하동 201-37</td>
                        <td width="12%">746-3663</td>
                        <td width="24%">죽세품(붓,죽세공)</td>
                    </tr>
                    <tr>
                        <td bgColor="#cae0ba" width="29%">이영희 한복</td>
                        <td width="9%">
                            <p align="center">이영희 </p>
                        </td>
                        <td width="26%">경주시 하동 201-4</td>
                        <td width="12%">    </td>
                        <td width="24%">한복</td>
                    </tr>
                    </tbody>
                </table></div><div style="background-position: 50% 0%; background-repeat: no-repeat;" class="skinViewContent">
            </div>
        </td>
    </tr>
    </tbody>
</table></div><p align="center">
</p><p align="center">&nbsp;</p>]]></description>
			<link>https://gdchal.com/?r=home&amp;m=bbs&amp;bid=tour2&amp;uid=4</link>
			<dc:creator>관리자</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guid>https://gdchal.com/?r=home&amp;m=bbs&amp;bid=tour2&amp;uid=4</guid>
			<dc:date>Fri, 18 May 2012 12:19:35 +0900</dc:date>
			<dc:subject></dc:subject>
		</item>
		<item>
			<title>통일전</title>
			<description><![CDATA[ <p align="center"> 
</p><div align="center"><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620" align="center">
    <tbody>
    <tr>
        <td width="520">            <div style="background-position: 50% 0%; background-repeat: no-repeat;" class="skinViewContent">
                </div><p style="background-position: 50% 0%; background-repeat: no-repeat;" class="skinViewContent" align="center"><img border="0" src="http://www.shillamiso.co.kr/pages/image/gj02.JPG"></p><div style="background-position: 50% 0%; background-repeat: no-repeat;" class="skinViewContent">
                </div><p style="background-position: 50% 0%; background-repeat: no-repeat;" class="skinViewContent"><strong></strong>&nbsp;</p><p style="background-position: 50% 0%; background-repeat: no-repeat;" class="skinViewContent" align="left"><strong>◈통일전</strong> ◈<br>통일전은 삼국통일의  정신을 계승하고, 다가올 남북통일을 기원하는 국민의 전당이다. <br><br>1977년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역사적 성업을 완수한 <b>태종무열왕</b>, <b>문무왕</b>, 김유신장군의 업적을 길이 찬양하고 화랑의 옛 정신을 오늘에 이어받아 발전하는 조국의 정신적 지주로  삼고자 이 곳에 통일전을 조성하였다. <br>통일전에는 태조무열왕, 문무왕, 김유신장군의 영정이 봉안되어 있고, 회랑에는 삼국통일의 기록화가  전시되어있다. 경역에는 삼국통일기념비와
태종무열왕, 문무왕,
김유신장군의 사적비가 서 있다.</p><div style="background-position: 50% 0%; background-repeat: no-repeat;" class="skinViewContent" align="left">
                </div><div style="background-position: 50% 0%; background-repeat: no-repeat;" class="skinViewContent" align="left"><table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617">
                    <tbody>
                    <tr>
                        <td width="617">
&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p><b></b>&nbsp;</p><p><b>◈화랑교육원◈</b><br>1971년 착공하여 1973년에  전국 최초의 학생교육원으로 개원한 화랑교육원은36,000여 평의 대지위에 웅장한 한옥의 건물로 지어진 정신교육의 전당이다. <br>신라  삼국통일의 원동력이 되었던 화랑도의 이념인 유,불,선을 근본으로 하는 충성, 효도, 신의, 용기, 자비의 정신을 이어받아 나라의 새 일꾼을  양성하고자 건립된 기관으로 전국의 남, 여 고등학생, 대학생 등을 주된 피교육자로 하고 있다. <br></p>
                        </td>
                    </tr>
                    </tbody>
                </table></div><div style="background-position: 50% 0%; background-repeat: no-repeat;" class="skinViewContent" align="left">
<br>화랑교육원은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등 큰 행사가 개최될 때마다 성화가 채화 되는  곳으로서 화랑이나 원화의 기상을 이어가자는 뜻으로 채화가 이루어 진다. 성화채화 기념관(연건평 200평)이 94년 준공되어 일반인에게 관람되고  있으며 바로 이웃에 있는 통일전과 함께 역사적 의의가 있다. <br><br>수용인원 : 204명 <br>
            </div><p align="left">
        </p></td><p align="left">
    </p></tr><p align="left">
    </p></tbody><p align="left">
</p></table></div><p align="left">
</p><p align="left"> </p><p align="center">
</p><p align="center">&nbsp;</p>]]></description>
			<link>https://gdchal.com/?r=home&amp;m=bbs&amp;bid=tour2&amp;uid=3</link>
			<dc:creator>관리자</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guid>https://gdchal.com/?r=home&amp;m=bbs&amp;bid=tour2&amp;uid=3</guid>
			<dc:date>Fri, 18 May 2012 12:17:09 +0900</dc:date>
			<dc:subject></dc:subject>
		</item>
		<item>
			<title>보문관광단지</title>
			<description><![CDATA[  
<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620" align="center">
    <tbody>
    <tr>
        <td width="520">
            <div style="background-position: 50% 0%; background-repeat: no-repeat;" id="ContentsLayer1" class="skinViewContent">
                <table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539" align="center">
                    <tbody>
                    <tr>
                        <td width="539">
                            <p align="center"><img border="0" src="http://www.shillamiso.co.kr/pages/image/gj01.JPG"></p>
                        </td>
                    </tr>
                    </tbody>
                </table>
                <p><strong><font color="#666600"><br>◈보문관광단지◈ <br><br></font></strong>경주종합개발계획의 일환으로 1988년 첫문을 연 보문관광단지는 320만평의 넓은 대지에 각종 위락, 오락시설을 갖춘 국제적 규모의 종합관광휴양지로 전지역이 온천지구 및 관광특구로 지정되어 있고 도로.전기.통신.상하수도 등 기반시설이 완비되어  있으며 2000년대 경부고속전철의 경주통과, 보문관광단지내에 경마장의 개장, 컨벤션 시티로의 육성, 1998 경주 세계문화엑스포 개최, 보문관광단지와 연계한 감포관광단지의 개발을 추진하고 있는 등
향후 한국관광산업의 1번지로서 뿐만 아니라 국제적 수준의 종합관광 휴양단지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br><br>경북관광개발공사에서는 보문관광단지를 고풍스럽고 은은한 맛을  풍기며 사계절 관광객이 이용할 수 있는 온천형 관광지로 개발하고 우아하고 정취있는 전통적 이미지가 창출될 수 있는 내륙형 관광휴양지로 개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br><br>보문호와 어우러진 주위경관이 아름다우며, 양질의 온천수가 솟는 숙박시설 또한 마련되어 이곳을 찾는 관광객은  해마다 늘고 있다. 국제적 규모의 관광호텔, 골프장, 테니스장 등의 운동시설,토산품점,
쇼핑센타, 그밖에 물 흐르듯 쭉 뻗어난 산책로, 보문호  중앙에 위치한 높이 100m의 고사분수 등 수많은 위락시설을 갖춘 경주의 사랑방이라고 일컫는 종합관광단지이다. <br><br>경주 지역에는 특히  벚나무가 많다. 어느 특정지역에만 많은 것이 아니라 시내전체가 벚꽃천지인 것이 다른 지역과 다르다. 4월 개화기때에는 발길 닿는대로가 온통  벚꽃천지이지만 그중에서 특히 이곳 보문호 주위와 불국사공원 벚꽃이 한층 기염을 토한다. 바람이라도 부는 날이면 꽃송이가 눈발처럼 날려 환상적인  경관을 연출한다. <br><br>조선 컨트리클럽, 보문 컨트리클럽
등 국제규모의 골프장이 조성되어 대자연의 여유로움 속에서 골프를 즐길 수  있다. 드넓게 펼쳐진 보문호수에서는 유람선, 보트, 윈드서핑 등 호반의 스릴과 낭만을 느낄 수 있다. <br><br>또 보문단지 곳곳에는 자전거  전용도로와 산책로가 마련되어 차분한 휴식과 사색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또한, 보문관광단지는 국내 최고의 문화행사장으로 고대와 현대의 다양한  문화를 접할 수 있다. <br><br>5층 6각형의 보문탑을 세운 보문야외공연장은 전통무용과 국악을 상설 공연하고 있다. 선재미술관은 국내·외  유명작가들의 작품을 연중 전시하고
있다. 보문 자동차 야외극장에서는 대형 스크린을 통해 수준높은 명화를 감상할 수 있다. <br><br>또 각  호텔마다 수준높은 음악회를 개최해 많은 관객을 모으고 있다. 보문관광단지에는 국제도시 경주의 위상을 높여주는 수준높은 호텔과 연회·회의시설이  마련되어 있다. 보문관광단지 내 호텔들은 대규모 연회장, 세계 각국의 요리를 맛볼 수 있는 식당, 수영장, 볼링장, 커피숍, 디스코텍, 면세점  등 다양한 부대시설이 조성되어 있어 관광객의 편의를 돕고 있다. <br><br>보문관광단지의 회의시설은 최신영상시스템, 5개국어 동시통역, 다양한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대·소규모 회의장이 갖추어져 있어 회의의 격을 높여주고 있다. </p>
                <p><br><strong><font color="#666600">◈</font></strong><font color="#666600"><b>경주월드</b></font><strong><font color="#666600">◈</font></strong><br><br>8만평의 대지에 펼쳐진 경주월드는 1년내내 축제의 분위기가 무르익는  곳이다.</p>
                <table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0">
                    <tbody>
                    <tr>
                        <td width="550">
                            <p>경주월드에는 갖가지 놀이기구와 눈썰매장, 물보라썰매장, 수영장 등이 개장되어 온 가족의 휴양지로 각광받고 있다. 특히 수영장에는 양질의 온천수가 풍부하게 공급되고 있어 큰 호응을 얻고 있다.</p>
                        </td>
                    </tr>
                    </tbody>
                </table>
<br>대규모 위락단지로 개발된 경주월드는 경주 보문단지 내의  보문호수가에 자리잡고 있으며, 현재는 야영장, 수영장, 축구, 야구, 테니스장 등 체력단련장과 우주전투기, 스포츠카 등의 오락시설을 갖추고 경주  곳곳에 있는 각종의 관광자원의 가치를 높이는데 커다란 역할을 하고 있다.<!-- 본문 : END -->
            </div>
            <p> </p>
        </td>
    </tr>
    </tbody>
</table>
<p> </p>
<p>&nbsp;</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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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관리자</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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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Fri, 18 May 2012 12:05:34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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